본문 바로가기

여행/유럽

북유럽 여행기 >> 스웨덴 스톡홀름 / 슬루센(Slussen)

5월4일, 북유럽에서 처음 맞는 평일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ESOMAR(European Society for Opinion and Marketing Research)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에 참석했다. Clarion Hotel 세미나실에서 진행되었고 내가 참석한 워크샵의 테마는 WoM(Word of Mouth)였다. 모두 15명이 참석하였는데 출신국은 미국, 호주, 노르웨이, 그리이스 등 다양했다. 리더는 프랑스의 한 CRM 컨설팅회사에서 오신 분이 맡았는데 영어 구사를 듣기 편하게 잘 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5시가 되었다. 워크샵 끝, 다시 투어 시작이다. 함께 간 이대리의 의견에 따라 이날은 슬루센(Slussen)에 가보기로 했다. 하절기의 북유럽은 낮이 길어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스톡홀름 첫날 구매한 지하철 7일 무제한 이용권은 이날도 위력을 발휘했다. 

중앙역(T-Centralen)에서 지하철을 타고 2정거장을 가니 슬루센에 도착했다. 사실 스톡홀름에 둘러볼 만한 명소가 참 많지만 서로 거리는 매우 가까운 편이다. 어렸을적 서울 종로에 영화보러 친구들끼리는 처음 가보게 되어 여기 저기 돌아다녀 봤더니 명동, 을지로, 청계천 등 귀에 익었던 지역들이 결국 다 거기서 거기였던 사실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났다. 

슬루센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라고 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갔다. 그러나 서울의 강남과 같은 요란함은 없었고 젊은 친구들이 조금씩은 부려볼 만한 화려함도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다.

슬루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GONDOLEN'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좀 부실해보이는 구조물이다. 공중에 카페를 차려놓은 느낌인데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위를 다녀오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윗동네를 거닐다가 전망좋은 곳이 있어서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 내려와서 보니 거기가 바로 거기였다.^^) 

거리에서 본 재미있는 풍경 중 하나는 자전거가 자동차와 맞짱뜨고 대등하게 다닌다는 것이다. 신호 대기가 있게 되면 자전거가 자동차와 함께 신호를 기다린다. 서울에서 그랬다가는 평생 들을 욕 그 순간 아마 다 들을 것이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스웨덴 사람들은 검정색 옷을 즐겨입는다는 점이다. 태양광이 약한 고위도 지역의 특성을 극복하고자 하는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봤지만 그리 신빙성 있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윗동네를 거닐다가 갑자기 한글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태권도가 지구 반대편 나라 청소년들의 심신을 단련시켜주고 있었다. 밖에서 들여다 본 수련생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우리나라는 주로 엄마손에 끌려 들어가게 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어 산만한 경우가 많은데 그와는 대조적이었다. 조금을 더 걸어가니 아름다운 예배당이 나타나 무의식적으로 한 컷 찍었고 다시 5분여를 걸어가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문(?)이 하나 보였다. 'MOSEBACKE'라고 씌어진 꽤 분위기 있는 문이었다.(스웨덴어 사전을 준비해오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간판의 뜻을 이해하면 더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을 것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카페였는데 전망이 매우 좋았다. 아쉬운 점은 시간이 7시 경이 되어 카페 영업이 끝났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 돈을 버는 것인지... 

나와서 다시 몇 걸음을 옮기니 또 다른 전망좋은 곳이 나왔다. 여기가 바로 아래서 바라본 'GONDOLEN' 위로 가는 길목이었다.(물론 이 순간에는 여기가 거긴지 몰랐다.) 

위에서 바라본 전망이 정말 대단했다. 도시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윗동네에서 다시 아랫동네로 내려오는 길은 바닥이 돌이었다.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겠지만 일년에 2번씩 보도블럭을 깼다 부쉈다 하는 동네에 사는 나로서는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스톡홀름은 전통양식과 모던스타일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도시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세르겔 광장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이 그 역시 스톡홀름 다운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가 아닐까?
숙소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선조들이 이야기 했건만 저녁밥고 거르고 싸돌아다녔던 것이다. 저녁 8시, 그 시간에 시내에서 밥집을 찾으니 있을리 만무했다. 겨우겨우 먹자골목 비슷한 거리를 찾기는 했으나 역시 대부분 식당은 문을 닫았다. 마침내 검증되지 않은 식당 하나를 찾았는데 아니 들어갈 수 없었다. 닭고기와 야채로 이루어진 샐러드(이거 외에는 먹을 만한게 없었다.) 그리고 맥주 한 캔을 시켜서 배를 채웠다. 

숙소에 돌아와 간단히 여정을 정리하고 여행기간 내내 나를 방해하지 않고 있는 날씨에 감사하며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