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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

북유럽 여행기 >> 스웨덴 스톡홀름 / 감라스탄

5월6일,,,컨퍼런스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식사후 여유 시간이 있어 호텔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다. 도심 한 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매우 상쾌했다. 서울하고 좀 다르다는 점은 부인할 수 가 없다. 건물도 적당량, 차도 적당량이 존재하는 도시가 갖는 혜택일 것이다. 그런데 유럽은 역시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것 같다. 자동차와 대등하게 거리를 다닌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자전거 전용도로도 일반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마련되어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주요 테마로 했던 마지막날 컨퍼런스 일정이 5시경 모두 끝났다. 주변 참석자들과 가벼운 작별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뒤 카메라를 들고 시내로 나섰다. 이 날은 감라스탄(Gamla Stan)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감라스탄은 스톡홀름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인데 이곳은 스톡홀름의 옛 시가지이다. 지하철을 타고 감라스탄역에 내렸는데 처음에는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잘 못잡았다. 첫날 우연히 맞닥뜨렸던 Helgeandsholmen 섬 지역과 다른 위치에 전철역이 있어서 혼동을 하였으나 지도를 보고 위치파악이 되었다. 다만, 우라나라에서 준비해간 여행가이드북의 지도에 감라스탄의 명소를 찾아다니는 순서와 루트까지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실제로 걸어다니면서 짚어보니 잘 맞지 않거나 혼동의 소지가 있었다.

아무튼 전철역으로부터 감라스탄 지역으로 진입하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높은 철탑의 건물이 있는데 성당인 것 같았다. 여행가이드에 '독일교회'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17세기 한자동맹시대의 상인들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감라스탄은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그 사이를 운치있는 골목길들이 연결하고 있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우리나라 인사동 거리 정도라고 할까?


그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대광장(Stor Torget)'이었는데,,,처음엔 지도를 잘못 따라온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작았다. 이 곳은 1520년 스톡홀름 대학살이 일어난 곳으로서 당시 약 90명의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켠에는 2001년에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노벨박물관'이 있었는데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대광장에서 나와 '대성당(Storkyrkan)' 뒷편을 지나면 '왕궁(Yttre Borggarden)'에 다다른다. 여행자의 들뜬 기분을 잠시 가라앉혀 주는 고요함과 엄숙함이 흐른다.


리다르홀름교회(Riddarholms Kyrkan)는 13세기에 수도원으로 지어졌고 17세기 이후에는 역대 국왕들의 묘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높은 철탑은 한 때 벼락으로 파손되었던 바 있다고 한다.


감라스탄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대부분은 아마 관광객일 것이다. '감라스탄'은 '오래된 도시'라는 의미인데 옛 도시의 형태가 이토록 잘 보존되어 있으니 관광객이 없을리 만무하다. 조그맣게 차려져 있는 선물가게들도 왠지 여기서 아니면 사지 못할 물건이 있는 것처럼 독특하고 운치있다. 이 옛도시 거리에서 쭈니 유니 줄 선물을 조금 샀다.

철의 광장(Jarntorget)이란 곳은 철을 보관했던 장소라고 하는데 광장의 가운데에는 철의 무게를 재는 계량기가 있다.


좁은 골목길이 인상적인 감라스탄, 그 중에서도 가장 좁은 골목길인 것으로 유명한 마르텐 트로치그그란트(Marten Trotzigsgrand)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좁은 길인 만큼 눈에 잘 띄지 않아 그 입구를 몇 회 그냥 지나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그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감라스탄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든 생각은 밤이 짧아서 며칠째 스톡홀름에 머무르면서 도시 야경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이 되기를 10시까지 기다려 다시 밖으로 나갔고,,,,,, 스톡홀름의 밤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왔다.